두 발이 모두 칼날로 이루어진 ‘그릇급’ 검술 인형. 강철보다 단단한 재질로 만들어졌으며, 세밀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제작되었다. 인형의 얼굴에는 여전히 필도도의 옛 모습이 남아 있다. 검은 머리카락은 예전처럼 부드럽게 흩날리고, 양손에 쥔 쌍검에서는 바람과 번개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.
백산파의 장문인이 된 것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진다. 당시 그녀는 두려움을 떨쳐 내고, 백산파를 위협하는 모든 시련을 헤쳐 나가 문파의 옛 영광을 되찾겠다고 맹세했다.
황행자가 용체 개조를 시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, 필도도는 그날 밤 곧장 대영으로 달려갔다. 그에게 직접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.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방에서 덮쳐 오는 치밀한 음모였다.
그녀는 상대가 여전히 정파의 도리를 지키리라 믿었다. 자신이 한발 물러서면 제자들만큼은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.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지켜 내지 못했다.
소중히 간직해 온 기억은 하나씩 뽑혀 나갔고, 텅 빈 껍데기만 남은 그녀의 의식은 인형의 몸에 억지로 갇히고 말았다. 손에는 여전히 풍뢰쌍검이 들려 있었지만, 마음속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.
연무장에 널린 잔해를 볼 때마다 까닭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. 하지만 자신이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지조차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.
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언가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잊어버렸다는 희미한 자각뿐이었다.
그리고 그 기억마저 언제든 갑자기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이, 그녀를 끝없는 고통에 빠뜨리고 있었다.